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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대한독립군비단 일등병-신학봉 독립지사

원 시 인 2023. 4. 18. 05:57

[인물시]   독립운동가 신학봉  [아버지]자랑스런 6.25 참전용사  [울산매일]독립운동가 찾기

 

대한독립군비단 일등병       

 

             - 신학봉 독립지사

 

아아! 만주는 우리 땅

조국을 빼앗긴 설움의 땅

모진 바람 북간도 용정촌에서

3.1 독립운동의 봉화 올렸노라  

 

조선민족의 독립 선언하고

대한독립군비단 이영식 중대

일등병 되어 일본군 격퇴하고 

소총과 탄환을 획득하였노라    

 

중국 관공서와 협력하여 

중국 한인 투쟁을 이끌고

독립 무장투쟁을 지원하여 

연해주에서 무기 운반하였노라  

 

독립을 위해 죽은 이들이

수천 수만의 용사들이었거늘

죽지 못해 죄인처럼 살았으니 

나를 독립지사라 부르지 말라

 

詩 21세기 원시인

 

왼쪽에 할아버지(고모의 작은아버지), 고모의 고모부,  고모부, [고모] 고모의 며느리, 고모의 고모

 

    신옥균 고모의 결혼식 사진이다. 할아버지(작은아버지)께서 고모님의 결혼식을 주관하셨다고 한다. 고모님은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러 서너 번 떠나셨다고 증언하셨다. 당시 일제는 면장을 지내셨던 형님(일찍 돌아가셨음)이 있었고 집안이 일제의 눈총을 받았기에 감시를 받고 있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는 것을 심하게 말렸고(고모님의 증언), 할아버지는 몰래 떠났다가 일제에 잡혀 고문을 받았다(친척 아주머님의 증언)고 전했다.


    고모님은 충주가 본래 고향이 아니라 어디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충주로 이사와 정착했다고 하셨다. 호적에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신덕원(申德元)을 검색하니 함경도 지역 기독교 집안인 것으로 찾았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정)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키워 만주(만주와 가까운 독립운동 지역)로 떠났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신덕원(申德元)은 호적에는 있지만 충주에 오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형님 가족만 충주로 내려와 정착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용포리 12번지에 살았고 그 동네 이상필(부자) 씨의 둘째딸(이순성)과 결혼하여 아버지(신광균)와 작은아버지(신장균)를 낳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많은 형제를 낳았다고 들었는데 질병과 6.25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나이 차이가 11살 정도 차이 있는 것이다.


    만주에서 있었던 러시아 군인들의 독립군 토벌작전인 '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많이 죽고 해체되는 과정에서 독립에 좌절의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술로 그 울분을 달랬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술에 취해 사셨다고 했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목수일로 집을 지으셨고, 이천시 고담동에 길가집(도담동 445-1)을 할아버지가 예전에 지으셨고 우리는 오남매가 그 집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지금도 원시인은 잠을 자다가 꿈을 꾸면 그 집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꿈에 나타난다. 엄마가 돌아사시고 10살 때부터 군대 갈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지금도 아직 그집이 존재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신학봉 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이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면 그 집을 둘러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