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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의 존대어

원 시 인 2010. 3. 28. 23:16

   우리나라를 일컬어 '군자(君子)의 나라' 또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지금부터 약 2300년 전에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이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烈傳)]에 전해지는 말이다. 당시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예절이 밝았다.
   그 밝은 예절의 근간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우리 말에서 비록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은 예로부터 시제표현과 높임의 표현이 잘 발달되어 있다. 물론 다른 유럽권 언어들을 살펴보아도 시제는 나름대로 잘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높임말은 우리말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높임의 표현을 가르치기가 어려웠고 배우는 학생들도 어려워 했다. 우리가 독일어를 배울 때 관사를 배우려면 어려웠던 것처럼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세분화되어 있는 것으로 상황에 맞게 정확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말을 정확히 배우려면 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성이 순수해서 남을 해칠 줄 모르고 남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도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동방예의지국'을 강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그 순수성을 잃고 남을 함부로 여기며  먼저 가려 하고, 먼저 먹으려 하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싹틔웠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말에서 높임의 표현이 사라져 가는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수백 번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물리쳐 그 역사를 이어왔다. 역사를 이어왔다는 것은 우리의 말도 이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결정적으로 외침을 이겨내지 못하고 36년간이나 국권을 잃고 우리의 말과 글까지 빼앗기는 큰 아픔을 겪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양반들은 일제에 탄압의 대상이 되고 오히려 상민들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말까지도 양반 중심의 문화에서 상민 중심의 문화로 흘러가게 되었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권세를 내세워 상대를 기만하고 약탈하는 말투는 정말 가난과 굴종에 찌들린 사람들의 말이었다. 말로 소외시키고, 말로 상대를 함부로 무시하고, 말로 상처를 주곤 한다. 그러고도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네가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하지.'
   그래서 우리나라 말에 존대어가 있으면서도 내가 먼저 존대어를 하면 웬지 내가 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먼저 반말하고 먼저 무시하고 먼저 욕하려 든다. 저속한 상민 문화이기에 그런 자리에서 금방 드러난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 교통사고가 나도 먼저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야 상대가 기를 죽인다고 내리자 마자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정말 교양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풍조가 직장에서도 벌어진다. 직장에서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반말로 함부로 말하고 그것이 친분의 표시인 양 아무도 책망하는 사람이 없다. 직위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겸손해지는 미덕은 없다. 내가 직위가 높으면 당연히 나이가 많아도 아랫사람처럼 대한다. 나이가 많고 직장에 먼저 들어 왔다고 함부로 대한다. 마치 군대문화를 답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라 내가 지지말아야 한다는 경쟁과 대립의 분위기로 간다.
   이런 분위기는 자신도 모르게 가정에까지 가져 간다. 옛날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는 남편도 아내에게 존칭을 했다. 물론 상민의 가정에서는 안 그랬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남편도 아내에게, 아내도 남편에게 반말이다. 그러니 아이들도 부모한테 반말을 한다. 대중 방송에서도 아이들이 제 부모에게 반말이다. 상민 문화가 만연하니 우리말에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존칭어가 설 자리가 비좁아진다.
   학교에서 매년 학년 초에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께 존댓말 쓰기 지도를 실시하고 약속이나 소감을 받아오라 교육한다. 그러면 대부분 부모들은 학교에서 가정교육까지 시켜주셔서 감사하단고 인사를 하나 간혹 아이들이 존댓말을 쓰니 어색하다며 그냥 반말을 쓰도록 두겠다는 부모들도 있다. 학교와 가정이 함께 노력하여 비뚤어진 언어문화를 바로잡아도 힘들 텐데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존대'나 '존경'의 의미를 물으면 엉뚱한 대답을 한다. '배려'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배려하는 일은 어색하고 귀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내가 낮아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서로 존대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마음이 제일 먼저 드러나는 것이 바로 존대어일 것이다.
   
문득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언어학의 대가 강신항 교수님은 그 학식과 교양이 뛰어나 뵐 때마다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데 그 분은 오히려 학생인 우리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먼저 높임말로 대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대했으며, 늘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계셨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길지 않은 인생 아옹다옹 다투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있어 상대를 향한 존대어가 첫걸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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