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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월이 오면

원 시 인 2010. 5. 12. 06:46

   <6.25 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유월이 오면

 

    철쭉꽃이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오월이다. 그래 다시 유월이 다가온다. 오월이면 붉은 철쭉이 있어 가슴이 뜨겁다. 아마 잔인한 4월 탓이리라. 그 인내와 슬픔, 그 분노와 격정이 오월이 타오르리라.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의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비극이다. 우리는 역사 이래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안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전쟁은 우리 곁에 있다. 제 형제끼리 싸우며 수많은 목숨과 재산을 불태운 6.25의 아픔은 반백년을 지내고도 끝나지 않았다.

    다시 오월에 저기 저 현충원 동산에 말없이 누운 영령들의 외침을 듣노라. 목숨이 결코 헛된 사자의 울음이 아니라고. 님들의 사랑과 님들의 가족과 님들의 목숨으로 우리의 가슴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죽어서도 흘리는 눈물로 우리는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으며 삶을 누리고 있다.

    나는 알았다. 비극의 역사를 대를 이어가며 부질없는 목숨을 연명해 가는 단 한 사람의 영화를. 그리고 그 영화가 끝나가는 날이 스스로 다가오는 것을. 수천만의 동포를 굶주림에 가두고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는 수뇌의 처절한 고독을.

    나는 보았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저들의 땅이 검회색으로 변해 식물도 나무도 싱그럽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그러니 어찌 백성의 목숨이 편안히 유지될 수 있겠는가. 압록강을 건너, 두만강을 건너 숨을 쉬고자 야행을 단행하리라. 마치 100년 전 일제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되(중국 오랑캐의 낮춤말)의 땅 만주로 떠나던 백성들의 야행처럼.

    나는 또 보았다. 금강산 온정각에서 전기를 받아 빛은 자유의 땅이고 어둠은 저들이 땅이라는 것을. 어쩜 그리도 밤이 어두운지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밤보다 더 어두운 그들의 세상이었다. 거기서 본 민둥산은 우리의 60년대 모습이었고, 거기서 본 배추는 우리 배추의 5분의 1이었다. 저주받은 땅에서는 채소도 곡식도 나무도 자랄 수가 없음을.

    미국 여행 때 나는 놀랐다. 우리의 황무지 같은 척박한 땅에서 시금치가 우리 시금치의 두세 배로 자라 있는 모습을. 손으로 건드리지 않아도 온몸을 떨듯이 생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미국이 왜 잘 사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하나님이 땅을 축복한 것이다. 모든 동물과 식물이 축복받은 땅에서 잘 자라고 열매를 풍성히 거두기 때문이리라.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의 가르침과 여행을 통해 깨달은 우리 남은 자의 사명은 하나 통일이리라. 죽어야할 한 사람 대신 숱한 목숨이 죽어가는 어둠의 땅, 저주의 땅을 열어야 하리라. 제 백성을 주리고도 형제의 땅, 형제의 목숨까지도 만행으로 약탈하는 저들의 음흉을 막아야 할 때.

    우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하는 통일을 준비하는 이가 있다. 누구일까. 남한에는 일자리 부족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교사자격증을 가지고도 교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과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일할 교회가 없고,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도 일할 곳이 없다. 사법고시를 패스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쌀이 남아돌고 비료가 남아돌고 기술자들이 남아돌고 대학을 나와서도 노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선진국의 도움을 받던 우리는 어느 새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세계 각국으로 손길을 뻗고 있다. 우리나라의 GNI대비 ODA 규모는 2008년 0.11%로 8억 1580만 달러(1조 392억원)이며 매년 빠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수백 개의 정부 또는 민간 해외 지원단체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80여개의 민간지원 단체의 수백억 원이 직접 간접으로 저들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저들은 굶주림에 죽어가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어둠과 추위에 휩싸여 공포에 죽어가고 있다. 일할 능력도 의욕도 없다. 저들에겐 인권도 없다. 하루아침에 수용소에 갇히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누가 저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 저들의 위대한 이가 저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가. 다같이 잘 살자는 저들의 이념이 다같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념의 끝을 저들은 알고 있는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어깨가 무겁다. 우리가 잘 먹고 우리가 평안할 때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바쳐 여기 누운 선열의 뜨거운 피가 있었듯 우리도 뜨거운 가슴을 나누리라. 승자가 없는 패자만의 전쟁이 아니라 이제 영원한 통일 조국 대한민국을 건설하리라.

    우리는 스스로 통일을 위한 예비비를 준비하지 않지만 통일은 준비되어지고 있다. 한꺼번에 달려 올라가 각자 저마다의 일자리를 찾아 신나게 저들의 땅을 다시 일굴 것이다. 문이 열리면 나라에서 시키지 않아도 달려가리라. 우리 민족 특유의 부지런함과 특유의 기술로 반도의 땅을 푸르게 가꾸리라. 그리하여 저 붉은 철쭉이 지고 유월이 다시오면 민족이 하나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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