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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시]애국열사의 꽃-이한응 열사(詩신호현)

원 시 인 2016. 10. 22. 19:30

[인물시] 2016년 11월의 독립운동가

 

애국열사의 꽃

 

             - 이한응 열사

 

 

의롭지 않은 산이 어드매요

열렬하지 않은 죽음이 어드매요

난세의 영웅처럼 빛으로 살다가

이역만리 푸른 눈물로 죽었노라

 

약관 나이에 망국 비운으로

부친이 관군 영장으로 전사하시니

구국의 깊은 물에 발을 담갔노라

목숨 넘어 의의 길로 걸어갔노라

 

넘치는 재기로 나이 스물여덟에

영국 공사관 서기관 옷 입었나니

검은 구름은 테임즈강에 어렸도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덮었구나

 

오호라! 맹렬한 조선의 선비

갈 길 잃었으니 망망대해로구나

앙천통곡 서른 두 해 자결하노니

장미꽃 되어 검은 구름 걷으리라

 

신 호 현

 

조선일보 : http://forum.chosun.com/bbs.message.view.screen?bbs_id=1030&message_id=1267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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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74(고종 11)∼1905. 조선 말기의 관료·우국지사.

개설

본관은 전의(). 일명 한응(). 자는 경천(), 호는 국은(). 경기도 용인 출신. 이경호()의 아들이다. 1892년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내용

1894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1897년 한성부주사가 되고, 1899년 관립영어학교 교관으로 전출하였다. 1901년 영국·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참사관(使)에 임명되어 영국 런던으로 부임하였다.

1903년에는 통훈대부에서 통정대부로 가자()되었고, 1904년 주영공사 민영돈()의 귀국으로 서리공사에 임명되어 대영 외교의 모든 책임을 지고 활약하였다. 1904년 2월 한일의정서가 강제 체결되어 한국의 독립이 흔들리자, 영국 및 여러 외국과 유리한 입장에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해 8월 제1차한일협약이 강제로 성립되어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잠식하자, 각국에 주재하는 우리 공사들에게 전신으로 연락, 한국 외교를 위하여 재외사절단이 공동 항쟁을 하도록 토의하였다. 또한 영일동맹의 부당함을 들어 영국 정부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주영 한국공사관을 폐쇄하는 등 영일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이 한국 정부의 주권을 강탈할 음모를 획책하자 이를 개탄하여 1905년 5월 12일 음독자살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후에 국내에 알려져 을사조약 때는민영환()·조병세() 등이 순국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원통함을 참지 못해 자살하는 이가 속출하였다.

주영한국공사관 명예총영사 마틴턴의 주선으로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용인에 안장될 수 있었다. 가선대부 내부협판에 추증되었으며, 장충단()에 배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한응 [李漢應]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